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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여사

백이실 2008. 7. 5. 03:01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때 그시절 미공개 사진들.
 
그리고 방송과의 관계...

 

 

 


KBS 당진송신소 준공식 날 박정희 대통령이 최세경 사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행사를 마지막으로 그날 밤 세상을 떳다고 하며, 이 때의 일은 보안상의 이유로 오랜기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KBS 사원조차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당진송신소에 보관중이던 사진이며, 박대통령이 당진송신소를 당진발전소라고 잘못쓴 휘호가 있었다는데 찾지 못했다고한다.

1961년 5월 16일. 그날로부터 18년간 이 나라라를 통치해온
박정희 대통령 시절은 긍정과 부정의 역사가 같이 하지만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면서 튼튼한 나라의 기틀이 마련된 것만은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방송과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최후의 일터 KBS 당진송신소....
박대통령은 처음의 시작도 마지막 끝도 KBS였다.
▼ 5.16 군사혁명 방송문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방송이
중심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장군은 KBS를 찾아 방송서막과 함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됨을 알리고 국민들에게 내놓은 그 약속이 방송
전파를 타도록 직접 진두지휘 했다.
당직 아나운서 박종세를 직접 만나 얘기했고 엔지니어
임시현 곁에서 그 방송이 제대로 나가는지를 확인 했다.


5.16 때 박정희 장군과 박종세 아나운서의 모습.
박종세와 임시현이 그때 쓴 글도 있다고 한다.



그날 새벽 KBS방송의 시작이 바로 5.16의 신호였으며, 그 신호와
함께 세상은 바뀌었다. 그날부터 방송국은 5.16주체세력의 뜻에
따라 운영되었고 KBS는 오랫동안 무장군인들이 지켜 왔다.
날마다 5.16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송이 계속되었다. 국내방송도 중요 했지만 대공방송, 해외방송도 중요하다고 생각 했을 것니다.
5.16이 일어나고 한 달 만에 국제방송국설치안이 통과 되어 한달
보름만인 1961년 7월 1일에 새로운 방송국이 탄생과 함께 대공
방송과 해외방송이 더 활기를 띠었다.
▲ 박정희 최고 회의 의장시절 KBS-TV 개국식에 참여했다.
5.16 얼마 후 텔레비전 방송국 설치를 서둘렀다. 달라가 없던 시절 1달라
라도 쓰려면 이리저리 궁리해야 했던 시절에 국가 최우선 사업에 쓰고자
마련해 놓았던 20만 달러를 KBS-TV설치를 위해 사용했다. 5.16이 일어난지
7개월 남짓 되어 KBS-TV전파가 발사된 것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파를 발사해야 한다면서 경기도 화성군 남양에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500Kw송신소를 세워서 1962년 9월부터 전파를 발사 했다. 민영방송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문을 열기 시작 했다. 부산에만 있던 문화방송이 서울에도 세워지고 동아방송도 세워졌다.
▲ MBC 반도아케이드를 찾은 박정희 대통령 모습.
또 TBC동양방송도 세워졌고, 1964년이 가기전에 민영 TBC-TV
방송이 문을 열었고, 1960년대가 다 가기전에 또하나의 민영
MBC-TV가 생겨 TV 3국시대가 열렸다.

KBS가 남산시대를 마감하고 여의도 시대를 연 것도 이 시절이고
국영방송시대를 마감하고 공영방송시대를 연 것도 이 때 였다.
방송 내용은 그 분의 의중대로 이루어 져,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방송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엄청나게 달라져
가고 있었다. 라디오 방송마저 난청지역이 많았던 시절에 보급된
라디오라야 100만대가 채 못되던 시절이었다.
TV는 HLKZ시절 3천대 정도에 AFKN이 방송하면서 다소 늘어났어도 만 대가 채 못 되었다. TBC-TV가 문을 열고 방송후 1965년 말까지도
텔레비전은 3만대 밖에 보급되지 않았다. 그것도 KBS-TV가 문을 열면서 정부의 특단조치로 2만대가 들어와 3만대가 되었다.



60년대 전반기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라디오만 듣고 살았왔고
TV는 국내에서 만들지도 못했고, 달라가 없어 수입조차 어려웠다.
40년 전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였다. 그러던 나라가 박정희 대통령
이 떠난 날, 1,500Kw 당진송신소 전파발사 스위치를 스스로 작동
할때 까지는 이미 세계적인 전파강국이 되었고 난청이 해소됐다.
라디오 안 달린 자동차 없고, 한 집에도 라디오 몇 대씩은 가지고 있는
것은 보통이 되었다.
1만 대도 채 못되던 TV수상기가 지금은 600만대가 되었다.
숫자로 보면 600배가 늘어난 것이다. 산간벽지, 섬, 오지에서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전국 방방곡곡에 라디오와 TV
송. 중계소가 세워졌다. 한 지도자의 강한 의지와 그 일에 임하던
사람들의 피와 땀어린 노력의 결정체였다. 우리는 그시절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이곳이 박정희 대통령의 최후의 일 자리었던 곳임을 알리는
비가 1980년 4월에 세워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 근혜양과
최세경 사장이 제막 했다.
▼ 아래는 박정희 대통령 마지막 일터 당시의 당진송신소 모습.

1961년 5월 16일 동 트는 새벽! KBS방송을 신호로 이 나라 통치를 시작해서
1979년 10월 26일! 흔히들 10. 26이라고 부르는 그날 ! KBS당진송신소에서
그의 마지막 행사를 치루고 세상을 떠난 박정희 대통령은
시작도 끝도 KBS 방송국이였다.


당진송신소 참석때 심은 기념식수가 많이 자랐다.

◈ 미공개의 가족사진 등 ◈
그의 사생홀은 일반 가정과 하나도 다름없는
너무도 소박하고 서민적인 면을 엿볼 수가 있다.




 
 

출처 : aowlr1004
글쓴이 : 수호천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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