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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주막 주인은 ‘양심’이죠” 박계수씨

백이실 2020. 5. 19. 21:01

무인주막 주인은 ‘양심’이죠” 박계수씨

입력 : 2007.05.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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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산동면 백현리 지방도로변에 자리 잡은 ‘무인 주막’. 테이블 두 개에 평상 하나가 갖춰져 있다. ‘무인 주막’은 주인이 지키지 않는다. 미리 준비해둔 동동주·돼지고기를 손님들이 차려 먹는다. 밥도 쌀포대에서 쌀을 꺼내 가마솥에 직접 해 먹어야 한다. 텃밭에 열린 고추·상추·오이도 손님 차지다. 돈은 양심껏 장독에 넣고 가면 된다. 주막 한쪽에는 ‘거울처럼 투명하고 저울처럼 정직하게 살자’는 글이 붙어있다.

 

주막은 이 마을에서 9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토박이 박계수씨(59·사진)가 2001년 4월 문을 열었다. 6년이 지난 셈이다. 그 결과는 어떨까.

“손님 열 팀 가운데 세 팀은 양심적으로 계산하고, 세 팀은 약간 모자라게 내고, 서너 팀은 아예 돈을 내지 않거나 턱없이 모자라게 내고 갑니다.”

박씨는 24일 주인이 지키지 않는 가게의 ‘영업 실적’이 어떤지를 묻는 질문에 “생각보다 얌체손님이 많지만 그럭저럭 현상유지는 되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양심 수준이 시골 주막 하나 운영할 수 있는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평일에는 하루 30~50명, 휴일에는 150~200명이 찾는다. 소문이 퍼지면서 인근 대구는 물론 부산·서울 등 전국에서 찾아온다. 마당에는 옛날 농촌에서 사용하던 지게와 도롱이·돌저울추·물레 등 농기구가 잔뜩 쌓여 있어 ‘민속박물관’ 노릇도 한다.

아침 7시쯤 읍내에 가서 술과 고기 등을 사와 냉장고 가득 채워놓고 저녁 8시쯤 문을 닫는다. 평일에는 5만원, 주말에는 3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박씨는 “저녁에 장독을 들여다보면 물건값 정도는 들어있다”고 했다.

박씨가 ‘무인 주막’을 연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만큼 배울 게 많을 것 아닙니까.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고속도로 무인카메라를 보고 무인 주막을 열기로 했습니다.”

그는 고교를 석달간 다니다 그만두고 농사 짓는 부모 덕에 배부르게 컸다고 했다. 재물 욕심은 없지만 속상한 일도 없지는 않다. 20대 젊은이들이 계산은커녕 냄비에 휴대용 가스레인지까지 가져간 적이 있다. 어느 날은 장독에 든 돈까지 통째 없어진 일도 있었다. 술에 취해 청소는 고사하고 주막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가는 손님도 허다하다.

인근 농공단지에 일다니는 부인(58)은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만두라고 성화다. 동네 사람들도 ‘바보’라고 한다. 박씨는 “무인주막 네 글자가 값이 있는 거지 재물은 잃더라도 상관없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어울려 즐기기 위해 시작한 만큼 기력을 고려해 딱 10년을 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구미|최슬기기자 skchoi@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5251826001&code=100100#csidxf6ecff77eabaa3cb6d3e94dca92e982